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마리 비안네 (문단 편집) == 기적 == 생존시부터 성인으로 공경받던 이답게 비안네 신부는 여러 가지 [[기적]]을 일으켰다. 정작 신부 본인은 자신이 일으켰다고 알려진 기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리며 겸손해했다. 비안네 신부는 프로비당스 여학교를 연 후 신자들 중에서 카타리나 라사늬와 베네딕타 라르데를 교사로, 요한나 마리아 자네를 음식과 빨래 담당으로 선발해 학교를 운영했다. 빠듯한 재정 상황 속에서도 신부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학교를 확장해 나갔다. 한번은 [[밀가루]]도 돈도 없어 소녀들을 내보내야 될 상황에 처하자, 신부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바닥에 흩어진 밀 낱알을 모은 뒤 프랑스의 선교사이자 신부인 성 요한 프란치스코 레지스(John Francis Regis, 1597 ~ 1640)의 유해를 낱알 속에 넣고 기도했다. 잠시 후 요한나 마리아 자네가 다락방에 올라가 문을 열자, 질 좋은 밀이 바닥에 넘쳐나도록 채워져 있었다. 어떤 날은 밀가루가 한 줌밖에 없는데 24명이 식사를 기다리게 되자, 비안네 신부는 자네에게 "밀가루 속에 누룩을 넣고 다음날 반죽하라"고 지시했다. 이튿날 자네가 반죽을 시작하자, 반죽통이 넘칠 정도로 반죽이 커져 20~30파운드짜리 빵을 10개나 구울 수 있었다. 하루는 지하실에 보관한 [[포도주]] 통이 새는 바람에 통이 빈 걸 자네와 빌리아 자매가 발견해 신부에게 알리자, 신부는 "[[하느님|포도주가 달아나는 걸 허락하신 분]]께서는 포도주가 돌아오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"라고 대답했다. 자네와 빌리아는 지하실 바닥에 고인 포도주를 긁어모아 2단지밖에 되지 않는 적은 양을 빈 통에 부었는데, 평소에 마시던 것보다 더 좋은 포도주가 커다란 통을 가득 채웠다. 또 점심 때 신부가 [[호박]] 한 접시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조각을 너무 크게 썰자, 카타리나 라사늬는 "그러다 호박이 부족할지도 모른다"며 걱정했다. 하지만 신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큼지막하게 썰었는데, 그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충분히 나눠주고도 접시에 호박이 조금 남기도 했다. [[오병이어의 기적]] 외에도 치유와 관련된 기적 또한 부지기수로 많았다.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, 종양에 손을 대자 곧바로 종양이 사라졌고, 걷지 못하는 소년에게 "다음 날부터 걸을 수 있을 것"이라고 말하자 신부가 말한 그대로 이뤄지기도 했다. 그 중에서 증인들의 증명이 적힌 확인서도 있는데, 아래의 내용은 1859년 9월 8일에 몰냉 신부에게 송달된 확인서이다. >1859년 3월 27일, 우리, 즉 장 루이 샤나르 시장과 프랑수아 베르즈, 본당신부 장 프랑수아 줄리앙, [[레지옹 도뇌르 훈장]] 수훈자 자크 드니즈, 장 롱바르, 벤자민 펠리시에 교장은 증언하고 확인하기를, 43세인 로사 에이스릭 부인이 1858년 7월부터 말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. 아르스 순례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온전히 신뢰받을 만한 남편의 확신에 의해 지난달 2번째의 9일 기도의 셋째 날인 23일 밤에 신비로운 방법으로 말하는 능력을 다시 얻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. 아래 서명한 이들은 이 기적의 진실성에 대해서 확인합니다. 몽모랭 회의장에서 발표함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